CJ오쇼핑은 4월 15일 각 부서의 막내 사원들이 마니아층을 위해 기획한 ‘오덕후의 밤’ 프로그램에서 피규어 제품들을 판매했다(맨위쪽 사진). 현대홈쇼핑은 3일 사내벤처 ‘H랩’이 기획하고 대학생 패널을 참여시킨 식품 판매 방송을 선보였다(맨아래쪽 사진). 각 업체 제공
“오덕후는 지갑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심장이 흔들리면 구매하는 겁니다.”
대부분이 잠든 시간인 지난달 15일 새벽 2시. CJ오쇼핑의 TV홈쇼핑 방송 시작 7분 만에 첫 번째 피규어가 팔려 나가자 김익근 쇼호스트는 목소리를 높이며 시청자의 구매를 독려했다. CJ오쇼핑 각 부서의 막내 사원들이 모여 기획한 ‘오덕후의 밤’ 프로그램이 처음 전파를 탄 날이었다. 오덕후는 마니아라는 뜻의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바꾼 말. 이날 방송은 한정판으로 나온 330만 원짜리 피규어 2개를 포함해 총 14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새벽 홈쇼핑 방송으로는 이례적인 매출이다.
성장의 벽에 부닥친 TV홈쇼핑 업계가 매출 반등을 위해 회사의 막내들에게 전권을 위임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조직 혁신에 나섰다. 실적이 갈수록 악화되자 주 고객층(40, 50대 여성)을 벗어나 20, 30대 남성 등으로 고객층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 막내에게 편성권 주자 ‘대박’
‘오덕후의 밤’은 입사 2년 미만인 신입사원 3명의 손에서 탄생했다. 한재성 PD, 장인정 PD, 문찬호 MD(상품기획자)가 ‘마니아를 위한 상품 방송을 만들겠다’며 먼저 손들고 나섰다. 일반적으로 박리다매로 수익을 올리는 홈쇼핑 특성상 마니아를 위한 방송을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영업본부가 매출 부담이 없는 오전 2시에 방송을 내보내기로 결정하자 세 사람을 중심으로 쇼호스트, 마케팅, 카메라, 무대디자인 등 각 부서의 막내급 사원들이 모여 방송 준비에 들어갔다.
방송 경력 10년 이상의 선배들은 “피규어, 드론 같은 상품이 홈쇼핑에서 팔리겠느냐”며 우려했다. 하지만 지난달 15일 피규어 방송에 이어 20일 드론 판매 방송도 대박을 쳤다. 대당 80만∼130만 원의 고가 상품이지만 총 21대가 팔려 매출 2200만 원을 넘겼다.
○ 전면에 나선 막내들…이유는?
막내 직원들이 전면에 나선 배경에는 ‘성장 정체’가 있다. 홈쇼핑 업계는 이미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업계 1, 2위를 다투는 GS홈쇼핑과 CJ오쇼핑의 올해 1분기(1∼3월) 매출은 각각 2742억 원, 2642억 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0.9%와 7.1% 감소했다.
이 때문에 청년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홈쇼핑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대홈쇼핑의 사내 벤처인 ‘H랩’도 같은 이유로 출발했다. 현대홈쇼핑은 지난해 3월 1∼4년 차 사원 30여 명으로 구성된 사내벤처를 꾸렸다.
젊은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해 이들이 주목한 것은 20, 30대에 익숙한 문화 콘텐츠였다. 이달 3일에 ‘쿡방(요리하는 방송)’ 인기를 반영해 대학생 10명이 요리연구가 이혜정 씨와 함께 요리하는 방송을 진행했다. 4월에는 아프리카TV 등에서 ‘먹방(먹는 방송)’ 콘텐츠로 1인 미디어 활동을 하는 유명 ‘BJ(브로드캐스팅 자키)’를 섭외해 닭발, 불고기 등의 음식을 누가 더 많이 먹는지 생중계했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빠르고 다양하게 분화되는 젊은 고객을 잡기 위해선 유통기업 내부 조직이 젊게 변신하는 수밖에 없다”며 “홈쇼핑 업체를 덮친 시장 침체까지 맞물려 ‘막내급 직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마케팅 혁신을 이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박재명 기자